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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요즈음 가톨릭 신자님들께서, 마음의 평화가 없고, 어지러우신듯 하여,

그리고 일부 신자님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이를 옳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기에,

타인에 대한 단죄와 관련하여 강길웅 신부님의 이 강론을 소개합니다.

너무 길기 때문에, 강론 전체를 소개하지는 못하고,

다만, 우리 카테고리의 상황에 비견된다고 생각되는 강론의 일부분만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강론 1.) ㅡ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강길웅 신부 강론 中에서...)


(전략)

사순 제 5주일 복음에는 간음한 여자가 나오는데, 요한복음 8장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께 끌고 와서 물었습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 쓰십니다. 그들이 대답을 재촉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자, 아무도 돌을 못던지고 나이든 사람부터 한사람, 두사람씩 돌을 버리고 빠져나갑니다. 나중에는 한사람도 남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인아, 그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여자가 대답합니다.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이 장면에서도 예수님은 참 멋진 분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죽어 마땅한 여자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손가락 하나 못대게 하시고는 떳떳하게 살려주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사순절이라는 광장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왜 초대 하셨느냐?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들고 있는 잘못된 돌맹이도 다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돌맹이는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고 해도 행복을 주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은혜니, 축복이니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들고 있는 돌맹이를 용기 있게 버려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인생이 무겁고, 세상이 피곤합니다.



저희 본당에 두 동서가 살면서, 함께 성당에 나왔는데,

큰 동서는 레지오 단장으로서, 성당 활동에 열심한 자였고,

작은 동서는 이제 성당에 나온 자로써, 신심이 깊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 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반신 불수가 되셨는데, 왠일인지 집안에 명절이나 제삿날이 돌아오면 항상 큰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큰 며느리가 시 어머니 모시는 것이 귀찮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한번은 둘째 동서가 남편에게 자기들이 시어머니를 모시자고 졸라서 결국 둘째가 어머니를 모셨는데, 둘째 동서는 시어머니를 모신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동안 집과 아이 때문에 문 밖 출입을 못하고 갇혀서 지냈는데, 이제 어머니가 집도 지켜주시고, 아이도 봐주시니까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았는데, 큰 며느리가 이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찾아와서, "시어머니가 너희집 식모냐, 왜 일을 시켜서 어머니를 불편하게 하느냐." 하며 나무랍니다.

그러나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고, 시어머니께서 좋아서 하시는 일인데, 어머니를 너무 잘 모시니까 시기, 질투가 생겨서, 말도 안되는 소리로 둘째 동서를 꾸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동서가 동네에 다니면서, 둘째 동서를 비난했습니다.

이제 보니, "시어머니 부려먹기 위해서 자기 집으로 모셔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작은 며느리한테 찾아와 큰 며느리를 비난했습니다.

"자기는 모시지도 못하면서, 남이 잘 모시니까 샘이나서 저런다고.."

둘째 동서 편을 들어줍니다.

그때, 작은 며느리가 말합니다.

"아닙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모셔본 경험이 없어서 늘 부족한데, 형님이 오셔서 가르쳐주셔서 늘 배웁니다."

하면서 오히려 형님 편을 들어줍니다.

큰 동서는 계속 돌맹이를 던져도, 작은 동서는 절대 돌맹이를 던지지 않습니다.


복 받을 사람은 꼭 복 받을 말만 하고, 복 받을 일만 합니다.


(후략)





(강론2) ㅡ 신바람 나는 세상 (강길웅 신부 강론 中에서...)


(전략)


이제 7장을 넘어, 8장의 간음한 여자를 보겠습니다.

어느날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사람들에 의해 끌려와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당시 율법으로는 그런 여자는 동네 마당에 끌어다 놓고 돌로 쳐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자를 놓고 예수님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에 있어서 성은, 가장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대상입니다.

말하자면, 성(姓)은 육체의 지성소와 같습니다.

발이 진흙에 빠졌다면, 발만 더러운 것이고,

머리에 먼지가 묻었다면 머리만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姓)이 더렵혔다면 육체 전부가 다~ 더럽힌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 정신의 영역에서 볼 때, 가장 소중하게 간직했어야 할 지성소는 바로 양심입니다.

물론, 사람의 성질이 급할 수도 있고,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 부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더럽혀져 있다는 것은 다~ 더러운 것입니다.

이를테면, 그들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간음한 여인을 끌고온 사람들은 바로 그 양심을 더럽힌 자들입니다. 더 나쁜 놈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율법을 몰라서 여인을 끌고 온 것이 아니며, 또 여인을 죽이기 위해 예수님께 몰려온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 정말 공격하려는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아주 간교한 자들입니다. 교활한 자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다면, 그 때 함께 간통한 남자도 끌고 왔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자만 끌고 왔는데, 벌써 그 자체로 그들의 모순을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는데도, 자기 죄는 모르고 남의 죄만을 바라보면서 돌맹이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맹이를 들고 있는 그 자체가 실제로는 죄에 묶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돌맹이를 들고 있는 한, 그는 양심이 굳어 있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셨을 때,

현장에 있든 사람들이 돌을 버리고는 나이 많은 사람 부터 하나하나 떠나가고, 나중에 예수님 앞에 여자만 남게 됩니다.


왜 돌을 던지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빠져 나갔을까?

한마디로 돌처럼 굳어진 잘못된 양심이 그들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아주 놀라운 솜씨로 사람들에게 양심을 되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죄를 지은 여인이기 이전에, 오히려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성(姓)을 더럽힌, 죽을 죄인도 살려주셨고, 죽이려고 했던 양심이 마비되어 있던 죄인들도 모두 놀라운 방법으로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열심하다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성당에 올때나, 레지오에 올때, 항상 돌맹이를 들고 옵니다.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돌맹이가 나오는데,

이런 자들이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봉사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도 잘 반성해야 합니다.


좌우간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죄의 올가미에 얼마나 철저히 묶여 그 노예가 되어 있는지를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비단 간음한 여인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8장에서 계속되는 대목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때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발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라 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나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 다 죄의 노예이다."

노예라는 말에 또 다시 오해와 배척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납니다.


(후략)



가톨릭 신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혹여 타인에게 돌맹이를 쥐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혹, 그 쥐고 있는 돌맹이를 다른 사람의 잘못 탓으로 돌리거나, 정당화 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또는 난 좋은 신앙인이 아니라서 돌맹이를 쥐고 있는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앞에서 강론 말씀과 같이,

돌맹이를 쥐고 있는 사람은, 양심이 굳어있고 더럽혀져 있는 사람입니다.

돌맹이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바로 그 돌맹이를 버려야 합니다.

돌맹이를 쥐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래도 연옥에 갈테지' 라고 생각하고 그 돌맹이를 끝까지 붙잡고 있다면,

그는 이미 지옥의 문턱에 한 발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비난 하는 사람보다 더욱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르고 저지른 것도 큰 죄인데, 하물며 알면서도 저지르는 것은 더욱 큰 죄입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도, 모르고 저지른 범죄는 정상참작이 되어, 용서를 해주거나 그 벌을 감형을 해줍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용서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고 살아간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고, 그 행위를 어떤 이유도 정당화시켜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고 살아가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신앙인이 아닙니다.



부디, 증오심을 갖고 있더라도,

마음 속에, 밉고 얄미운 마음이 가득 하더라도,

정녕, 저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꾸만 그들의 잘못된 행동들이 눈에 보이더라도,

이를 비난 하는 목소리를 내어, 내 양심과 마음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지 맙시다.




죄 중에서 살아가고,

저 또한 날카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 부끄러운 사람으로써,

다른 분들께 위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위선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가톨릭을 알지 못하는 타 종교인이나, 무신론자 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가톨릭 신자라고 표방하고,

예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그 말씀과 뜻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써,

어느 누구도 아닌, 사랑을 실천하여야 할 가톨릭 신앙인에 의해서,

비난과 욕설과 증오가 뒤범벅이 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 글을 올립니다.



부디,

우리 가톨릭인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미사에서

"제 탓이오. 제탓이오. 제 탓이옵나이다." 라고

제 자신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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